그들은 점점 무서움이 회오리를 치고 있었다. 바람과 구름, 그리고 자연의 소리만 들려오던 평화의 땅에, 갑자기 불길한 예감과 함께 검은 먹구름이 서서히 드리고 있었다. 게다가 총을 맨 군인들 같다는 말에 그들 모두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들은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문을 걸어 잠갔다. 아이들이 보았다는 그들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들 내외는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도주하는 중공군? 아니면 길을 잃은 북한군? 그도 아니면 남한의 국방군들이 이곳까지 진격해 온 것은 아닐까. 만봉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만봉은 혹시 몰라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따발총을 꺼냈다. 그 따발총은 이동하는 포로들 대열에서 도망을 칠 때, 중공군 호송병을 목 졸라 죽이고 뺏은 총이다. 만봉은 시간이 날 때마다 총을 분해하여 녹슬지 않게 동백기름으로 손질을 해두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다. 따발총에 실탄까지 약실에 장전하고는 문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참이다. 그러면서도 만봉은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무 일 없이 그대로 지나가기만을 기대했다. 온 식구들이 가슴을 졸이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바로 그때, 아니나 다를까, 기어코 그들이 들이닥쳤다. 저벅거리는 신발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시커먼 그림자들이 달빛 창 너머로 어른거린다. 순간, 만봉의 손가락이 방아쇠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그중 한 사람이 안으로 들이대고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른다.

만봉은 순간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이대로 문을 열어 줄 것인가, 갑자기 갈등이 생겼다.

“안에 사람이 살고 있으매, 빨리 문을 열기요. 아니 열면 불을 지를 꺼구만.”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온 가족이 그들 손에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만봉을 자꾸만 압박을 가해 온다. 밖에 있는 그들이 몇 명인지도 모른다. 대강 짐작으로 일곱, 여덟 명은 되는 것 같았다. 만봉은 손가락이 방아쇠 고리에 닿는 순간 무엇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하늘로부터 신의 계시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 많은 무리를 상대로 싸울 수도 없고, 그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없는 아주 어리석은 일이었다. 만봉과 그 가족들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를 게 없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아내와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다.

그때였다. 밖에서는 철커덕, 철커덕 실탄을 장전하는 노리쇠 뭉치 소리와 함께 발길로 문을 걷어차며 안으로 대고 소리를 지른다.

“허튼 수작 말기요. 문을 아니 열면 안으로 대고 그대로 내 갈겨 댈 끼요. 아니 그러매 동무들.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 원수님의 전사들이오. 어서 손을 들고 나오기요. 그러면 모든 일을 용서하구, 모두 살려 줄끼구만. 아니 그렇소 동무들?”

순간, 만봉은 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비상구로 만들어 놓은 뒷문을 열고 뛰어 산속 깊이 몸을 숨겼다. 다행히 그들은 아무도 눈치를 채질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이미 문을 열어젖히고 총구를 들이대며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말자와 아이들은 몸을 사시나무 떨 듯하며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다.

“여성 동무, 어찌 동무와 아이들뿐이매. 왜 혼자 지비, 남편은 어디로 빼 돌렸는지 바른대로 말하기요. 어디로 숨겼으매?”

말자는 둘러댔다. “남편은 오래전에 인민 의용군으로 나가지를 않았겠소. 헌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시오. 혹 어떻게 해서리 알아볼 방법이 없갔시오?” 말자는 임기응변으로 넘겨짚어 말을 했다.

“그래요? 동무! 어찌 그 말을 우리들에게 고지 들으라 하매, 집안에서 사내 냄새가 이리도 풍기는데. 담배 냄새 말이오. 담배 냄새?”

우두머리인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말자 가슴에 총 뿌리를 들이댄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엄마 치마폭에 매달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아! 인민군 동지들, 담배 냄새 말이오. 그것은 내가 가끔씩 피었든 거구요. 여기는 동무들도 잘 알다시피 깊은 첩첩산중이라 어디 약을 구할 수가 없질 않소. 그 점은 오해하지 마시라요.”

말자는 그럴싸하게 둘러댔다. 그러자 그들은 말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드리는지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자! 여성 동무래, 우리 까놓고 말인데 실은 우리가 밥을 먹은 지가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오. 그러니 따스한 하얀 쌀밥이나 한 끼 얻어먹고 갈 수 없갔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실은 말자도 쌀 구경을 한지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주식은 조와 수수, 그리고 감자와 옥수수 강냉이밖에는 없었다. 말자가 망설이자 그들은 다시 다그치고 있었다.

“뭘 꾸물거리고 있으매. 우리들도 시간이 바쁘단 말입네다.”

말자는 할 수 없이 넉넉하지 못한 식량 사정을 사실대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것이라도 해 달라고 다그친다. 말자는 옥수수 강냉이 가루에 무시래기를 섞어서 죽을 쑤어 김치와 함께 상까지 차려 내놓았다. 허기가 얼마나 졌던지 죽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젊은 장정들의 골은 배에는 기별도 없을 것 같았다. 그 식량을 가지면 말자 내 식구들이 며칠은 버티고도 남을 양이었지만 한쪽으로 그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