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봉은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잘만 하면

큰돈이 되는 양귀비를 재배하고 싶었다”

윗목에 말자 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만봉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 같았다. 영감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말고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자식들도 다 죽고 딸 하나 달랑 하나 있는 게 희망이라고 했다. 이름을 말자라 지은 것은, 아이들 이름이 예쁘면 명이 짧다는 속설 때문에 아무렇게 막 지었다고 했다. 나이는 아직 어려도 깊은 속내나 마음씨는 죽은 제 엄마를 쏙 빼 닮아 그런지, 깊으면서도 순하고 착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딸의 대한 은근한 자랑은 그게 끝이 아니다.

얼굴도 그만하면 누가 봐도 밉상은 아닐 테 고, 학교는 안 다녔지만 한글도 깨우치고 웬만한 한자는 쓰기도 하고 뜻풀이도 할 줄 안다 고도 했다. 영감님은 만봉을 의식하고 하는 말처럼 그에게는 들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만 봉은 생각보다 빠르게 건강을 되찾아갔다. 그 모든 것이 다 영감님과 그 딸 말자의 깊고 깊은 정성 덕분 이라는 생각은 잠시도 잊지를 않았다.

어느덧 산중에도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면서 영감님은 화전을 일구기 시작했다. 나무숲을 태우고 그 자리에 옥수수도, 담배도, 그리고 밭가운데에는 양귀비를 심었다. 불법이기는 하지만 양귀비를 심어 아편 농사를 할 참이다. 항상 위험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누가 보는 사람도 없고 아편을 만들어 압록강 건너 단둥에 가면 큰돈을 만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발해의 유민들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지금도 많이 거주를 한다고 했다.

만봉은 주인 영감님의 일을 도와드렸다. 땅을 파고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대로 있을 수많은 없는 데다, 바깥세상 일이라고는 전혀 알 수가 없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전쟁이 끝이 났는지, 아니면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는지, 하고 있다면 어느 쪽이 유리한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고 갑갑하여 견딜 수가 없다. 아니 남북통일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 봉이 이곳으로 온 지가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외부 사람이라고는 그림자조차도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여름이 몇 차례 지나가고 겨울이 다시 닥쳤다. 영감님은 여태까지 만든 아편을 몸 속 깊이 감추고 압록강 건너 단둥엘 다녀온다며 집을 나섰다.

아편은 마약이라 위험하기는 해도 작자만 잘 만나면 큰돈을 장만할 수가 있다며 영감님은 많은 기대를 걸고 먼 길을 떠난 것이다. 아편도 아편이지만 무엇보다도 영감님은 자기 딸, 말자와 만봉을 생각해서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옛날 같으면 말자의 나이는 시집을 가고도 남을 나이 다. 그런데 영감님은 이상하게 다른 때에는 보름이면 다녀오셨는데 이번에는 한 달이 넘어도 소식이 없다. 혹시, 일이 잘못되어 중국 공안원들에게 끌려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는 말자는 전신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아편은 나라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마약이라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그 자리에서 총살감이다. 그런 사실을 말자는 그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서야 영감님은 돌아왔다. 다른 때보다 도 고생을 너무나 많이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집을 나설 때보다도 영감님은 많이도 수척해지셨다.

지금도 이 나라는 전쟁 중이라, 가는 데마다 민심들이 어수선하고 국경수비대들의 감시가 어찌나 심한 지급한 마음에 아편을 버리다시피 헐값에 팔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말자를 부르더니 저고리 안쪽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딸에게 내밀었다.

“이거이 네 혼수 감이다. 이거야 말로 사람들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바로 금이라는 게 아니고 뭐이 메, 네 어머이 대신 이 애비가 큰맘 먹고 어렵게 장만 한 금 부치다. 금방 주인 말로는 몇 냥은 족히 될 것이라 했서야, 이것으로 금가락지도 만들고, 금 귀걸이도 만들고, 금목걸이도 만들고,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은 원 없이 만들어 가져라. 알 간. 애비가 되어 딸에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의 절세미인 양귀비가 발랐다던 그 뭐이라 하더라. 그래, 여자들이 얼굴에 바르면 곱고 예뻐진다는 그 화장가루다. 분말이야, 분!”

그는 딸 말자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모처럼 애비로서의 자신감과 마음의 여유가 보였다. “언제 닥쳐올지도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 아니 메, 생각이 날 때, 조금 씩이라도 마련해 두는 거이, 그게 사람 사는 게 아니고 무엇이매.” 말자는 아버지로부터 혼수 감이라는 말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빨개졌다. 더욱이 옆에서 자기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만봉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감님은 계속해서 바깥세상 이야기를 본 대로 느낀 대로 들려주고 있었다. 지금도 전쟁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고, 신의주 쪽 국경선에는 조선으로 건너오는 중공군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신의주 거리는 연일 계속되는 공습으로 어디를 가나 모두가 불타 폐허가 되었고, 젊은이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내몰려 구경할 수조차 없고, 허리 굽은 늙은이들마저도 전쟁 복구 사업에 동원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봉에게는 여기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며, 밖으로 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고 여기서 계속 눌러 살기를 신신 당부를 했다. 그 말을 들은 만봉은 자신도 이 깊은 산속에서 화전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잘만 하면 큰돈이 되는 양귀비 재배도 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