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자 : 2022년 10월 1일 광고문의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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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가영웅 참전용사들을 ‘양민학살자로 몬 KBS’ 규탄 시위
작성자 kookbangco




노병들 2만 명 참석 ‘KBS OUT’ 외침

이화종 회장 사장 퇴출 시까지 계속

 

정부의 부름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325천여 명의 전우 중 생존 노병들과 유가족 미망인 대표 등 2만여 명은 9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광장에서 참전용사들을 양민학살자로 몬 프로그램 방영 책임으로 사장의 퇴출과 해체를 촉구하는 규탄 시위를 갖고, 눈물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KBS 사장 사퇴와 해체구호 속에 국회 앞까지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이날 무공수훈자회 김정규 회장, 고엽제전우회 황규승 회장, 월남전참전자회 이화종 회장은 오후 2시경 KBS 본관으로 사전 면담신청 절차에 따라 방문했으나 사장은 국회 일정으로 자리에 없다는 대답 속에 부사장을 만나 사죄 이야기를 들었으나 우리는 이를 수긍할 수 없으며 사장의 퇴출 시까지 시위는 계속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규탄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이화종 회장은 대표 인사를 통해 “58년 전 조국의 부름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우리는 그동안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따른 예우와 권리를 잊고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우리 참전용사들이 모든 것을 참아 온 것은 우리가 국가 영웅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부 언론들은 우리의 희생과 예우에 대해 한마디 말도 없다가 우리가 내는 시청료로 운영하는 국영방송이 국가 영웅들을 갑자기 양민학살자라고 들고 나와, 우리는 그동안 한없는 울분과 어려움 속에서 살아온 국가 영웅들인 것을 폄훼해왔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우리를 양민학살자로 몬 국영방송 KBS를 그냥 둘 수 없다고 판단하여 무공수훈자, 고엽제, 월남참전 대표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규탄시위 취지를 밝혔다.





이화종 회장은 국가 영웅들을 양민학살자로 폄훼한 프로그램 진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사과하고 사퇴할 것을 수용하면 바로 물러나겠지만 대화가 안 되면 끝까지 퇴진운동에 앞장서겠다KBS 본관을 향해 외쳤다. 참전용사들의 요구사항은 KBS1 TV 시사멘터리 추적’ <얼굴들, 학살자의 기억> 방영에 대한 사과 방송 월남전참전 보훈 4단체에 대한 사장의 방문 사과(822일까지) 월남전참전자회 입장에 대한 동일 한 방송사과 월남전참전자의 숙원사항에 대한 방송 등이었다.

참전용사와 유가족(미망인)들의 KBS 규탄 시위는, 오전 11시부터 군가가 광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풍물놀이가 진행되고, 오후 1시 김만조 월남전참전자회 영등포지회장(국방전우신문 대표)의 사회로 국민의례에 이어, 무공수훈자회 김정규 회장, 고엽제전우회 황규승 회장, 월남전참전자회 이화종 회장, 초대 따이한회 석정원 회장 소개에 이어, 내빈과 이화종 회장의 대표인사, 양민학살 음해대응 경과보고(김만조), 호소문과 결의문 낭독, KBS 방문, 규탄결의 삭발식, KBS 사장 모형 화형식 후 국회진출 행진으로 진행됐다.





시위행사 중간 규탄결의 삭발식에는 40여 명의 전우들이 삭발참여를 신청했으나 시간 관계로 김만조(서울 영등포), 박병정(경기 안성), 정수연(서울/유족) 10여 명만이 삭발식에 참여했으며, 인천에서 참여한 윤명순 유가족(미망인) 등 규탄 시위 가족들은 삭발 장면에 눈물을 흘리고, 석정원 초대 따이한 회장은 선배 전우로서 크게 돕고 지원하지 못한 마음으로 너무도 미안해 마음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여성 미망인 대표로 삭발식에 참여한 정수연 유가족은, 백마 30연대 전투지원 중대 4.2인치 박격포 소대원으로 근무한 이치석 병장의 아내로, 홀로 35년의 가슴 아픈 삶을 살고 있으며, 삭발 후 작은 메모 한 장을 남겼다.




여기 모인 우리는 남편이, 아빠가, 할아버지, 삼촌이 먼 곳에 가서

자유·평화 유지와 국가의 명예를 위해 싸운 국가 영웅이요 그의 가족

들이며, 전우의 살과 피로, 원한과 고통으로 먼저 가신 전우들과, 병든

몸과 마음으로 지금까지 참고 기다려온 우리들이다. 우리의 위대한 공

적을 폄훼하는 사람들은 자유대한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따이한회 석정원 초대 회장 증언

1989, 양민학살은 없다고 베트남은 밝혔다

198975일 따이한중앙회 참전용사 14명은 1011일의 일정으로 공산 베트남 정부를 방문하게 되었다. 공산 베트남의 정부 기관으로 민간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사이공 투어의 초청을 받는 형식으로 방문하게 된 것이다. 체류 기간 중 호치민기념관에서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관계자와 외무장관, 체육부장관, 상공회의소 위원장 등을 만나 한베트남 친선 구성을 위한 상호 협력 사항을 협의했으며, 이 중 기관 한쪽 벽에 많은 사람을 포승하여 끌고 가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들은 이 사진을 양민학살 장면이라고 설명을 하기에 사진 속의 인물을 자세히 보니 한국 사람이 아니라 저 사진 얼굴과 우리와를 잘 대조해 보라.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하자 담당자는 양쪽 얼굴을 대조해보더니 이 사진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이다라면서 그 사진을 즉시 떼어내 옆으로 치우며 한국인은 양민학살을 하지 않았다라고 일행에게 말했다. 이 문제는 이미 한베 사이에는 없는 일이었음을 이 노병은 증언하는 바이다. 91세의 본인은 당시 그 장면, 그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규탄 시위 참석 참전용사들은 짚으로 만든 2개의 허수아비에 불을 붙여 화형식을 끝낸 후 선도차 뒤에 상복을 갖춘 30여 미망인들과 함께 이화종 회장을 선두로 국회를 향해 가두 행진을 시작했다. 광장에서 국회 앞 금산빌딩 광장까지 이르는 동안 이화종 회장과 2만여 전우들은 30여 개의 KBS 규탄 구호를 외치며 전진을 계속했다.

국회진출을 시도했지만 경찰의 강력한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이화종 회장은 차량에 올라 여러분들은 국가 영웅이며 다 함께 끝까지 우리의 위대한 희생과 공헌을 폄훼하는 세력들을 물리치고, 우리의 권리와 명예를 지켜나가야 한다며 시위 종료를 알렸다. 일부 참전용사들은 국회진출을 저지하는 경찰들을 향해 아들 같은 당신과 국민들은, 우리의 희생과 공헌으로 평화와 안정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그 주인공인 우리 참전용사들을 보고 양민학살자라고, 그것도 우리 시청료로 운영하는 국영방송이 방영하고 외쳐대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저지선 앞에서 언쟁과 가벼운 다툼이 있었으나 질서 정연이 규탄 시위는 430분경 만세삼창으로 종료됐다.

58년 전 파월용사 국민 환송장이었던 이곳 여의도광장에서, 오늘은 양민학살이라는 KBS의 슬픈 폄훼와 배신감 속에서 국가 영웅 참전용사들은 너무도 큰 이념적 갈등을 책망하며 새벽길 오던 길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구교득/김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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