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한 녀석이 달려들어 보따리를 풀어 헤치다 말고

그들은 깜짝 놀랐다. 보따리에서는 분해된 따발총과

실탄까지 나왔으니 무엇으로 둘러 댈 수가 없었다.

“여성 동무래 고맙소. 그리고 혹 이상한 사람 나타나면 보위부로 빨리 연락하기요. 아마도 수일 내로 다시 올지도 모르오. 잘 있기요”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어디로 가는지 그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별이 총총 떠있는 하늘 아래로 별똥별이 화살처럼 나르고 있었다. 그들은 떠났으나 말자는 마음이 불안해 견딜 수가 없다. 그들이 완전히 여기를 떠난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자신들의 동태를 염탐하려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남편이 집으로 들어왔다가 막 딱 드리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말자는 등골이 오싹 해진다. 떠나갔던 그들이 다시 들이 닥칠 것만 같은 예감이 쉽사리 사라지지를 않았다.

새벽녘이 다 돼서야 남편이 들어왔다. 잠을 설친 데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눈에는 실핏줄이 터질 듯 뻘겋게 핏발이 서있었다. 말자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사실대로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얼마나 놀랐는지 자면서도 무엇엔가 쫓기는 것 같은 잠꼬대까지 하고 있었다. 이곳이 장백산 줄기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 지역 일대가 김일성 빨치산 혁명 유격대들이 활동하던 곳이라, 이곳의 성역화 사업을 위해 수색작업을 하는 중이라는 것도, 곧이어 보위부에서 재수색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만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온다. 이상하다. 사실은 요 며칠 전부터 꿈 지리가 뒤숭숭했다. 생전 보이지도 않던 어머니도 보이고 고향의 어린 동무들도 만났다. 만봉은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 말자도 이이들도 남편이 하자는 대로 바삐 움직였다.

“여보! 우리는 인제 중국 단둥으로 가는 거요.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단골로 다니시던 왕 서방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물건 만 가지고 가 값을 제대로 받고 팔면 우리는 그곳에서 한 밑천을 잡을 것이고, 그렇게 만 된다면, 그 곳에는 전쟁도 없으니 거기 다 집도 사고 아이들 마음대로 학교에 다닐 수가 있을 것이요. 그리고 그곳에는 옛날부터 발해의 유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빨리 서두릅시다. 언제 그들이 다시 들이 닥칠지도 모르니 어서 짐을 쌉시다.”

만봉은 자는 아이들까지 깨웠다. 잡히면 우리들은 그대로 총살을 당할 것은 너무나 뻔 한일이다. 무기도 있는 데다 여태껏 아편을 재배해 왔겠다. 어디 그뿐인가. 남조선 출신에다, 국방군 포로가 되어 중국인민 해방군 포로 호송병까지 죽인 장본인이 아닌가. 그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들 내외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이라 해야 덮을 이부자리와 식구들이 당장 먹을 식량이다. 그러는 새에 날이 밝았다. 만봉은 입을 옷가지며 간장과 소금도 빠트리지를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아편은 기름 먹은 종이로 몇 겹 싹 싸서 고추장 방구리 속에 뚜껑을 덮으니 감쪽같았다. 그 정도면 귀신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믿었다. 내일 새벽이면 이곳을 떠나야만 된다. 그들은 아이들과 같이 아버지 산소에도 들렀다. 마지막 인사였다. 그리고 통일이 되면 다시 찾아뵙기로 했다. 말자는 이번에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영영 올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면서 아예 아버지의 유골을 화장을 해서 뿌리자고 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만봉의 가족들은 막상 이곳을 떠나려 하니 왠지 서운하기도 했지만 한쪽으로는 바깥 세상구경을 한다는 기대에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이 깊은 산속에 홀로 두고 떠난다는 것이 말자에게는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들은 하루 온종일 길 떠날 준비를 하느라고 피곤도하고 내일 일찍 떠날 생각에 초저녁부터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를 않는다. 이러 저리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막 들 무렵이었다. 갑자기 문밖이 소란하더니 무장을 한 열 명이나 되는 군인들이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그들이 말하던 보위부 요원들이다.

“꼼짝 말고 손 들 기요. 우선 인민 증부터 내 보이기요?” 그들은 만봉의 가슴에 총 뿌리를 들이대며 손을 들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더니 만봉을 독기서린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며 소리를 내지른다. “당신은 누구 지비, 남자는 없다고 우리는 들었는데. 아무래도 이거이 수상하구만.”

만봉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 가족들은 아무런 증명서도 없었다. 만봉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말자는 왜놈 때 만든 것이라 해방되던 날 바로 찢어버렸고, 아이들은 출생신고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 공민증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의구심을 산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이 보따리들은 또 뭐이요. 우리 몰래 도망을 치려 한 것 아니 매, 야, 이거 이 정말 수상하구만” 그중 한 녀석이 달려들어 보따리를 풀어 헤치다 말고 그들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보따리 속에서는 분해하여 감추어 두었던 따발총과 실탄까지 나왔으니 무엇으로 둘러댈 수가 없었다. 사태는 점점 만봉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두 눈을 휘동구리며 다그치고 있었다.

“아니, 이거 이 또 뭐이라, 이건 총이 아닙네. 그것도 따발총 아니오. 여기 이 실탄까지 있으니 도대체 동무 신분이 뭐이지비. 또 이 많은 총알은 뭐이란 말이오. 어서 대기요. 날래 바른대로 대기요. 혹 당신 반동이 아니오. 우리들은 북조선 인민공화국 혁명 사업에 앞장선 전사들이 아니매, 쌍간나 날래 대라우”

<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