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남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은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같은 나라가 일단 유사시에 다른 나라의 도움을 다시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도움을 준 나라를 배신하지 않고 감사할 줄 알며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에 백악관을 다녀왔습니다. 미국인도 가보기가 쉽지 않다는 곳을 그것도 외국인이 방문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평소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곳이어서 약간은 낯익은 곳이란 인상을 받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니 각종 연회장이니 가구 진열이며 모든 것이 세련되고 기품이 있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벽면에는 역대 대통령이나 영부인의 초상화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도 특히 제 눈을 끈 것은 루스벨트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의 초상화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두 분은 재임 중에 우리나라에게 결정적으로 고마운 일을 많이 하신 분이십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2차 대전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스탈린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이 독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고(장개석이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다고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다고 알려졌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스탈린의 승인 하에 김일성이 남침을 하였을 때 미국과 UN의 참전을 결정하고 수많은 미국 군인의 전사자를 내면서까지 싸워주어 패망의 위기에 봉착한 우리나라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것에 대하여 식자층에서는 패전국의 식민지를 되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고, 미국의 참전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이지 우리를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미국의 역할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으나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일본의 식민지였던 오키나와나 그 외 쿠르드족 또는 티베트 나 신장위구르를 위시한 중국의 소수민족은 왜 독립하지 못했습니까? 이들 민족들은 모두 고유한 언어를 가진 민족들이지만 이제는 독립할 기회조차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 52개 소수민족이 사는 곳곳에 대량의 한족 이주가 진행되어 이제는 그들 소수민족의 본거지에서조차도 소수민족으로 전락되고 있으며 오키나와 또한 일본 본토인의 이주에 의해 완전히 흡수되었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후를 되짚어보면 스탈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독립국 명단에 넣어주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을까요? 일본이 얼마나 미국을 잘 다루는지는 오키나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 그 많은 전사자를 내고 확보한 오키나와인데 유구국민이 아닌 패전국인 일본한테 되돌려 주는 거 보십시오. 거기서 배웠는지 패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입니다.
지금도 이 사람들은 우리가 조금만 약해지면 한 때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빌미삼아 중국처럼 간섭하려 할 사람들입니다. 과연 우리가 오키나와처럼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6•25 참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참전용사 비(碑)나 전사 문헌에서 참전용사들이 가장 황당해 한 것은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극동의 조그마한 한국의 전쟁을 위하여 왜 나의 피를 흘려야 하는가? 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존재감이 없었으면 미 국무장관 에치슨이 소련과 중공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한 방어선에 한국을 제외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이 선언이 북한의 남침을 유인하게 됐지만) 이런 상황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의 공산화를 방지하겠다는 그 하나 만으로 유엔군을 조직하여 북한의 남침에 대응한 것입니다. 이때 미군은 4만 명 이상의 전사자를 냈고 전쟁경험이 없는 신생 한국의 국군을 싸우면서 훈련시켜 전쟁을 마무리하고 오늘의 한국군을 키워낸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전쟁으로 인한 산업 시설의 파괴로 국가재정이 파탄 난 상태에서 원조물자로 조달한 대충자금 으로 국가예산의 50%이상을 지원함으로써 기아 상태의 우리를 구원하여 오늘날의 번영의 기초를 닦게 해 준 것입니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오늘을 살펴봅시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그늘아래에서 자유민주주의 이념 하에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세계 10위 전후의 경제강국을 이룩했습니다. 반면에 공산주의 체제와 3대 세습 체제를 구축한 북한은 1인당 GDP가 우리의 1/10에도 못 미치는 형편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게 고마워 하기는 커녕 공공연하게 반미하는 것이 마치 의식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풍조가 있는 거 같아 안타까워 이 글을 올립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국제관계에서 우리가 살아 남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냐고? 저는 그것이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인과 개인의 분쟁에는 국가라는 통치기구가 있어 어떤 형태로든지 해결할 방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간의 분쟁에는 이것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UN? 국제기구?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강대국도 아니고 북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같은 나라가 일단 유사시에 다른 나라의 도움을 다시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도움을 준 나라에게 배신 때리지 아니하고 감사할 줄 알며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 택 수
국방전우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