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은 기 경영학박사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전)중앙공무원교육원장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스피드 경쟁에 돌입하였다. 획일적인 대량생산을 통해 부를 창출하던 산업혁명 시대에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했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속도의 경제'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스피드 역량은 왜 중요한가? 첫째, 저 원가 전략을 달성할 수 있다. 똑같은 품질의 제품을 경쟁자보다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으면 인건비, 금융비용, 물류비용을 모두 줄일 수 있다. 둘째, 선수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세계 최초나 업계 최초로 신제품을 만들면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시장지배력도 높일 수 있다. 신기술 신상품은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기존제품은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 셋째, 고객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고객은 친절한 서비스도 좋아하지만 신속한 서비스를 더 좋아한다. 신속한 서비스는 고객에게 소중한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다.

필자가 '시테크'란 책을 쓴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정보화 사회를 연구하고 강의할 때 쓴 책이다. 시테크는 전통적인 시간 관리와는 관점이 전혀 다르다. '촌음을 아껴 쓰라' 이런 전통적인 시간관은 근면 성실을 강조하고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시대에 가능했지만 이제는 시간의 전략적 활용 즉 스피드와 타이밍 그리고 고객의 시간이 중요해졌다. 스피드 역량 또한 정보기술 등 새로운 기술과 기기를 활용해야 하고 조직 전체의 시간 문화와도 연계되어야 한다. 개인도 생각의 속도, 정보의 속도, 의사결정의 속도, 실행의 속도가 모두 빨라야 한다. 시테크는 시간의 관점이 달라져야 할 뿐만 아니라 개인역량, 정보기술, 조직문화까지 시간 중심으로 전환될 때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피드 국가'가 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스피드 경영을 도입했고 정부는 전자정부로 전환되면서 신속행정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까지 더해져서 국가 전체가 빠른 국가로 전환된 것이다. 이 스피드 덕분에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삼성은 끊임없이 세계 최초를 만들어 냈고, 인천국제공항은 친절뿐만 아니라 신속 서비스로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운전면허증이나 여권도 당일 갱신해 준다. 어지간한 행정서비스는 당일 즉시처리가 가능하고 관공서를 방문하지 않고 앱을 통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스피드와 시테크가 우리의 경쟁력을 이끌어온 것이다.

요즘 대만이 1인당 국내 총생산(GDP)에서 우리나라를 앞섰다는 뉴스가 나왔다. 대만은 반도체기업인 TSMC를 대만을 이끌 선도 기업으로 정하고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제지원과 국민의 성원도 있었지만 핵심은 스피드전략이다. 이 기업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정부도 의회도 신속행정과 신속입법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지자 주변 농민들을 설득해서 논밭으로 갈 물을 TSMC 공장으로 보내기까지 하였다. 반도체는 세계 최초가 아니면 몰락한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알고 지원한 것이다. 지금 삼성과 TSMC는 피 말리는 속도경쟁을 하고 있다. 2025년까지 2나노 양산을 앞두고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다. 파운드리는 위탁생산 방식이다. 삼성은 쉘 퍼스트(Shell First)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고객이 요구하기 전에 생산라인을 미리 확보해 놓고 고객사를 먼저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빠른 서비스'를 넘어 이제는 '미리 서비스'인 셈이다. 초 스피드 경쟁이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한국이 가장 빠른 국가였다면 지금은 대만이 가장 빠른 국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왜 스피드 역량이 떨어졌을까?

첫째는 입법부가 발목잡기 때문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기업을 지원하는 법 대신 표를 얻기 위한 입법을 하고 있다. 기업을 살리는 법은 지체시키고 발목을 잡는 법은 신속하게 처리한다. 대한민국의 스피드를 죽이는 주범은 바로 여야 정치인들이다. 둘째는 노사갈등이다. 노사가 합리적인 협상을 통해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투쟁과 파업이 일상화되었다. 스피드에 쫓기는 경영진과 시간을 볼모로 한 노조의 싸움은 대개 노조의 승리로 끝난다. 시간 지체로 인한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미봉책으로 타협하는 게 관행이 되었다. 노조 투쟁의 핵심은 '시간 지체' 투쟁이다. '준법투쟁'이라는 것도 실은 시간 지연을 통한 압박이다. 이게 스피드 경영의 아킬레스건이다. 셋째, 직업관의 전환이다. 요즘 기업인들의 의욕이 많이 꺾였다. 기업환경은 급변하는데 정치는 불안정하다. 기업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압력도 커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인을 압박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예전에 비해 의무와 책임보다 권리를 더 추구하고 있다. 기업인이나 근로자나 절실함과 절박함이 없으니 속도가 느려졌다. 먹고살만 한 나라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쟁국가들은 절박한 각오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다시 뛰어야 한다. 여기서 밀리면 그동안 쌓아 올린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스피드가 있어야 여유시간이 생기고 성과가 있어야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지금은 초 가속의 시대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시테크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출입 기자들에게 이렇게 밝혔다. "벌써 1년이 지났다. 변화의 속도가 느린 부분은 다음 1년에는 속도를 더 내겠다" 그동안 국정 운영을 하면서 세월의 빠름과 속도의 중요성을 실감했기에 나온 말일 것이다. 행정부만 빨라진다고 대한민국이 빨라지는 게 아니다. 정부도, 국회도, 기업도 모두 새롭게 뛰어야 한다. 초 가속 시대는 시테크에 길이 있다.

( 출처 : http://www.smedail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