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태 인 박사

국방전우신문 논설위원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남들의 칭찬을 받거나 실력을 인정받아 명성을 얻을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뭔가 잘못되었던 순간, 실패했을 때가 훨씬 더 중요하다. 잘못된 실패를 바로 잡으면 우리는 한 단계 더 높고 더 멀리 인생을 내다볼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깨우치는 건 기쁠 때는 배울 게 없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많이 배운다는 사실이다. 고통과 슬픔은 우리 인생을 한 단계 승화시키는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행복과 기쁨 대신에 고통과 슬픔을 원할까요?

한 때 명성을 날리던 성악가 캐슬린 배틀 인생을 보면 이게 바로 알 궂은 삶의 아이러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출신 캐슬린 배틀(kathleen Deanna Battle, 1948~)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대학교 음악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그곳에서 일하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을 만나 크게 고무 받았다. 그녀는 서정적인 소프라노 음성과 독특한 기교로 전 세계의 청중을 사로잡아 1980~1990년대 우리시대의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으며 흑인 성악가로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를 뽐내는 소프라노가 되었다. 그녀는 블랙스완(Black Swan, 흑조(黑鳥)라는 전설의 성악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녀의 전성기 시절 현란한 테크닉을 뽐내며 부르는 천상의 목소리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관객들은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캐슬린 배틀은 일명 ‘핑’ 발성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크게 소리를 내지 않아도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듯 전 층 관객석까지 낭랑한 목소리가 전달됐다고 한다.

그녀는 1977년 메트 오페라에 데뷔하며 오페라 스타로 점점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인기가 치솟을수록 그녀의 말과 행동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며 고집불통이 되어갔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불협화음을 내고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오페라는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동료들이 그녀와 작업하는 것을 몹시 꺼렸다. 그녀는 리허설에 늦거나 공연을 취소하는 일이 잦아지고, 그녀는 스스로 고립되어 갔다. 결국은 1994년 그녀는 교만함으로 메트 오페라에서 퇴출당하고 만다. 그 이후 그녀는 오페라 무대에 서지 못하고 독창회 등 개인적인 소프라노 활동 밖에 할 수 없어서 서서히 대중들로부터 잊혀지는 불행한 소프라노가 되었다. 캐슬린 배틀 같은 천상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성악가가 자성을 지킬 줄 알아 교만하지 않았더라면 블랙스완으로 남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1987~)는 테니스 변방으로 간주 되던 세르비아 출신으로 2023년 1월에 호주오픈 정상에 오르며 스페인 선수 라파엘 나달(Rafale Nadal, 1986~)의 메이저 대회 역대 최다 우승 기록(22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그는 대회에서 라켓을 내던지고 괴성을 지르며 어떻게든 이기고 마는 고집 센 동유럽 선수로 펜들의 사랑을 크게 받지 못했다. 더구나 2022년 초에는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아 호주에서 추방당하며 세계적인 ‘악당’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는 우승 연설에서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을 세계 곳곳의 테니스 꿈나무들에게 꿈꾸는 것을 두려워 말라. 너의 꿈을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어려움이 닥치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도전 앞에서 기죽지 마라. 너희들은 할 수 있다”며 ‘꿈’을 얘기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는 큰 부상이 없는 한 향후 몇 년은 테니스 스타로 건재할 것 같다. 그의 ‘꿈’에 대한 열변은 세계 어린 테니스 꿈나무들에게 존경받는 테니스 스타로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노자의 ⟪도덕경⟫ 곳곳에 “공로가 이루어지면 몸을 물려야 하는 것은 하늘의 도(道)이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훤히 드러나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니 자기 공로가 있게 되고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니 오래 간다”는 명구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는 공로가 없어지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자는 오래 갈 수 없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본보기로 삼아 자신에게 정직하고 스스로를 이기며 자성(自省)을 지키는 것이 실력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