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은 기 박사

(사)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경영학박사

"나는 눈물 없는 자유와 평등이 인류의 문명을 초토화시켰다고 봅니다. 이제 생명과 사랑을 중시하는 생명 자본주의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 이어령 교수는 말년에 생명자본주의를 주창하였다. 이분이 강조하는 생명자본이란 생명의 가치가 보편적 문화로 반영되고 물질적 가치가 아니라 공감과 기쁨이 상품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이 교수는 그동안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이념에 매몰되어 생명을 등한시하는 오류에 빠져있다고 진단하였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있지만 어느 쪽이 득세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회적 갈등이 심화 되고 서로 싸우게 된다. 생명보다 이념을 중시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피흘린 혁명도 경험해 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 봤어요. 딱하나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눈물, 즉 박애입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입니다.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살 수 없는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극단적인 이념투쟁은 이기적 행동이다. 결국 자기 자신과 자기편에게 유리하도록 행동하고 이익을 나눠 가진다. 이기적 행동은 끝없는 투쟁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앞에 붙은 단어를 살펴보면 그 당시의 사회적 가치를 읽을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정보 자본주의 등이 있고 비공식 용어로 정글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 등도 있다. 각각 그 시대 사회적 특성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된 것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문제점이 커지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자본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나타난 것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다. 기업은 주주 임직원 거래처 고객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희생이 따르게 되면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의 추세는 이윤창출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요즘 ESG가 필수경영과제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어령 교수는 앞서가는 지식인답게 이해관계자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생명자본주의를 예견하고 주창한 것이다. 사회적 가치창출이 처음에는 기업의 부담으로 여겨졌지만 사회에 기여한 만큼 사회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고 더 큰 보답을 받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회적 가치에 기여하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지속 가능의 원동력인 셈이다.

그렇다면 생명자본주의가 강조하는 기업의 이타적 사랑은 비용일까 생산일까. 그 기업은 세상 사람들을 돕는 기업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객들도 이런 기업을 더 사랑하지 않을까.

요즘 산업현장에서 인명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카카오 화재사고로 수많은 고객이 고통을 겪었다. 데이터센터의 이중화를 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다. 이런 와중에 할로윈 데이에 이태원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하였다. 안전시스템을 잘 갖추고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할 일이다. 모두 생명자본에 대한 인식부족이 빚어낸 사고이고 참사다. 돈을 더 벌고 경제가 더 발전해도 생명존중이 없으면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물질적 가치에서 생명 가치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낸 책이 '눈물 한 방울' 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보면 뜨거운 눈물이 나온다고 하셨다. 창밖을 나르는 참새 한 마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새, 풀 한 포기를 보아도 그 안에 소중한 생명이 있음을 알기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타인을 위해, 다른 생명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말이 결국 이 교수님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이태원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모든 생명이 사랑받고 존중되는 생명자본주의 시대는 과연 언제쯤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