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 호 박사

한국안보평론가협회장, 해병대령(예)

 거시적 역동적 안보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

러시아 독재자 푸틴의 시대착오적 제국주의 비전 발현에서 비롯된 영토야욕이 우크라이나의 대량 양민학살과 인권유린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 국회의 화상연설을 통해 한국전쟁을 상기시키며 지원을 요청했다. 50여명만의 국회의원이 이를 시청했다니, 외교 참사에 가까운 한국 정치인의 민낯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만일 미국의 바이든 이나 중국의 시진핑이 국회에서 연설했다면, 의원들은 의석을 가득 채우고 기립 박수로 호응했을 것이다. 현재 정의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젤렌스키는 국제사회에서 처칠 같은 영웅의 반열에 올랐고, 강대국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저항의 아이콘이자 자유세계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지난 6ㆍ25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발전을 동시에 최단기간에 성취한 한국을 우크라이나의 롤 모델이라며 애정을 보여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결례는 동방예의지국으로서는 물론, 자유민주공화정의 21세기 신세계 질서 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우행이 아닌가 한다.

이 전쟁은 2차 대전 이후 지속되어온 미ㆍ소 양대 진영 간의 냉전시대에서 미국 중심의 집단 안보체제인 脫냉전시대로 이행한 이후, 다시 미ㆍ중 패권다툼의 新냉전시대로 바뀔 수 있는 전환기의 역사적 중요 사건이다. 특히 이 전쟁은 세계 식량 및 에너지 위기를 촉발하면서 지전략적/지정학적/지경학적 동일맥락에 처한 한반도의 안보에도 직결되는 중대한 이슈임을 정치권이 체감하지 못하고서 국내정치에 만 몰입해 있다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낸다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큰 힘을 얻을 것이고, 푸틴의 권위주의 체제는 내부로부터 붕괴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 참 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현 권위주의 내지 독제 체제가 붕괴되고 중생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파격적인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美의회의 초당적인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는 그 동안 단기적 편익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G7 수준의 선진 경제 강국이자 군사 강국인 스스로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민주주의와 인권 이슈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가치기반 외교로 전환해야 우리의 장기적 국익에 부합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규탄하며 유엔 총회에 매년 제출해온 크림반도의 인권침해 결의案이나 비군사화 결의 안 등에서 문재인 정부는 매년 기권해왔다. 이제 우리도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그리고 일본과 맞먹는 수준의 군사지원을 능동적으로 제공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충분하다.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와는 단기적 경제 손실을 초래할 수 있으나, 대의명분과 시대정신에 걸 맞는 선택과 집중으로 국익우선의 거시적 안목과 미래지향적 안보외교를 펼쳐나가야 할 때가 왔다.

 국제질서 변화 동인과 한국안보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미ㆍ중간의 전략경쟁은 세계 각국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들을 전략적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아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EU 국가들, 특히 영국·프랑스·독일은 미국이 지향하는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원하기 위해 독자적인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중국의 남중국해 세력 확장에 대응할 해군함정을 인도-태평양에 파견하고 있다.

다른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가 주도의 민주주의와 러시아·중국을 축으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와의 대결 국면을 보인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 후유증 대두와 더불어 세계화의 쇠퇴, 미·중 간 전략경쟁 심화,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우월감의 미흡 등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동요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음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의 성급한 나토 가입시도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토록 빌미를 주고, 유럽에서 중립적 입장으로 민족국가의 존재를 유지하던 국가들이 생존을 위해 강대국 중심 세력권으로 들어가는 세력균형 현상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자국 에너지의 배타적 독점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식량안보의 심각성 대두, 민간인 학살에 따른 전쟁 범죄 증가, 지구 표면기온 상승 및 기후변화 후유증, 우주와 사이버 안보 위협증가 등의 新 안보 위협이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제재에 반발해 유럽연합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자, 독일 등 유럽연합 국가들이 에너지 공급지를 저가의 러시아에서 미국 주도의 에너지 공급 블록으로 변경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동시 방문이 중국 견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아시아 동맹국의 지원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비춰지자,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의 거부반응이 표출되고 있다. 그로서는 세계화의 위축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제로 코로나 바이러스 정책으로 폐쇄적 어려움을 겪는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한 인도-태평양 지역 내 안정과 평화를 이뤄내는 당면과제의 극복도 중요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후유증을 너무 과대포장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역효과가 나올 수 있는바,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요컨대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란 권위주의 정권과 맞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차 현실로 나타나는 다원적 新 안보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며, 특히 북한의 7번째 핵실험 가능성과 더불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군사기지들에 대한 북 핵 위협을 여하히 억제할 것인가가 심각한 당면과제로 대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