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승 목

국방전우신문 논설위원/목사

코로나19가 한참이던 2020년 5월, [한국 6.25 전쟁 7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22개 UN 참전국의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KF94 마스크를 지원하였다.

625 전쟁은, 미국 등 전투 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에 총인원 1,957,733명이 참전하여, 이 가운데 37,902명의 전사자와 103,46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매우 처절한 전쟁이었다. 추진위는 참전용사에 9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에게 마스크 50만 장을, 나머지 21개의 참전국에 50만 장을 배분하였는데, 로버트 윌키 미국 보훈부 장관은 “우리가 보살펴야 할 참전용사를 위한 고귀한 대의를 향해 함께 손을 잡아줘서 감동했다”라고 밝혔고,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트위터를 통해 “육군에 복무했던 사람으로서 기쁘고 미국은 다정한 기부와 너그러움에 대해 한국 측에 감사드린다”라고 전하였다.

이 밖에도 암호 통신병으로 활약했던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 참전용사에게도 잊지 않고, 마스크 1만 장과 손 소독제 등 방역 물품을 지원하였고, 영국의 참전용사를 대상으로도 마스크 3만 장을 지원하였는데, 이에 대해 영국의 첼시 왕립 보훈병원에서는 “여러 전쟁과 전투에 참여한 참전용사들이 있지만, 꾸준히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와 감사를 전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라고 하여 대한민국의 보은 행보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다.

이탈리아의 언론 [오세르바토리오 시칠리아]에서는 “한국은 잊혀진 전쟁의 이탈리아 참전용사를 잊지 않는다”라는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이 기사에서 참전용사의 자녀인 산토르씨는 “한국이 참전용사 가족에게 100개가 넘는 KF94 마스크가 담긴 선물 가방을 가정당 1개씩 보냈고, 거기에는 다시 한번 자유를 위해 싸워준 이들에게 감사한다는 진심 어린 편지가 담겨 있었는데, 이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어서 더욱 감사를 느꼈고 우리도 한국을 절대 잊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6ㆍ25 전쟁에 참전한 참전국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보은(報恩) 행보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참전국들로부터 [은혜를 잊지 않는 나라!]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매우 잘한 일이다. 은혜는 절대로 소홀이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6ㆍ5 전쟁을 통해 많은 인명 손실과 막대한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지만, 피로 맺어진 인연인 ‘혈맹(血盟)’을 얻었다. 이들 나라에 대한 보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2018년 7월 27일, 1952년 육군사관학교를 마치고 소위로 임관해 왕립포병대 20연대 소속으로 후크고지 전투(사미천 전투) 등에 참전했던, 브라이언 패릿(Brian Parritt) 준장이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관한 '625 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 받았다. 그는 증조할아버지부터 대대로 왕립포병대에 근무한 군인 집안에서 자라 난 참 군인이다.

그런데, 브라이언 패릿 준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6ㆍ25 전쟁에 참전한 자신의 소견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영국 연방군과 미군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데, 실제로 1953년 휴전까지 한국을 지켜낸 건, 한국 육군과 공군이었다...(생략)..... 한국의 젊은 청년들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필자는 이 말에 너무나 감사했다. 이것은 6ㆍ25 전쟁에 대한 가장 정확한 판단이다. 6ㆍ25 전쟁은 분명 UN군의 도움 없이, 우리의 힘만으로 이길 수 있는 전쟁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UN군만으로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이기도 했다. 어쪄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6ㆍ25 전쟁 당시, 가장 처절하고, 가장 험난한 전투에 누가 있었는지 우리 스스로 잊은 것이다. 그 험지에는 피 끓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었다. 가장 꽃다운 나이에 조국을 지킨다는 염원 하나로 자원입대한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형제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UN군들은 대한민국의 청년 군인들이 웃으며 가장 험한 전투에 자원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받았으며, 군인으로서 깊이 존경한다고 증언한다.

1950년 6월 28일, 수도 서울은 함락되었다. 패잔병 8000여 명을 모아 급조한 [한강 방어선]도 얼마 못 버틸 것이 분명해 보여, 미 정보당국에서도 열흘 안에 전쟁이 끝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주를 이루던 상황이라 미국 정부는 한국군에 대한 무기 지원마저 망설이고 있었다.

6월 29일, 당시 미 극동사령부 최고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 전선 시찰을 위해 [한강 방어선]을 방문하던 중 참호에 혼자 남아 있던 한국인 소년병사와 만났다. 맥아더 장군은 그 소년 병사에게 "언제까지 혼자 참호를 지키고 있을 것이냐?"라고 물었는데, 그 소년 병사는 "상관의 철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맥아더 장군은 그 소년 병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느냐?”라고 다시 물었는데, 소년 병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기와 탄약만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맥아더 장군은 "이런 용감한 병사가 남아 있는 나라는 절대 망해선 안 된다. 우리는 전력으로 한국을 도와야 한다"라며 본국 합동참모본부의 지시가 내려오기도 전에 극동사령부 가용 병력을 동원, 한국군 지원 명령을 내렸다. 그는 훗날 회고록을 통해 "당시 한국군은 무기와 장비가 매우 열세인 상황이었지만 싸울 의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 불리한 상태에서도 싸워볼 만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스스로 지키지 않는 나라를 대신 지켜주는 나라는 없다. 이것은 오늘날의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미국은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철수하였다. 하지만, 노인에서 여성들까지 소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뛰어나온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6ㆍ25 전쟁 당시, 미국의 맥아더 사령관과 영국의 브라이언 패릿 준장은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은 수많은 대한민국의 청년 병사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우리가 돕는다면 이들은 반드시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기에 대한민국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워주었다.

대한민국은 은혜를 잊지 않는 나라이다. 그런 보은의 나라에서 필자는 이상한 보은을 마주하게 된다. 나바호 인디언과 에디오피아 참전용사에게까지 찾아가는 보은이 자국의 참전용사에게까지 전해지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 아닌가? 내 주변에는 아직도 자신이 보훈대상자인지 모르셨다가 뒤늦게 보훈대상자로 지정된 어르신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아니, 보은은커녕, 마땅히 약속된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미지급 전투수당은 대선마다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공약으로 약속되었건만,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보은의 나라 대한민국은 UN참전용사와 자국의 참전용사를 차별하여 평가하고 다른 태도로 보은하는가? 대한민국의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은은 더 이상 말뿐이거나, 정치적이기만 하거나, 대외 홍보용에 불과한 것이거나, 다른 UN참전 용사들과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분들께 보은 할 수 있는 날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훈의 달 6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영웅들에 대해 진정한 보은이 올바로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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