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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 양| 제목 | 어느 이등병의 귀향(歸鄕) |
| 작성자 | kookbangco |
 전우문예/단편소설 소설가 김성열 국가유공자 “도대체 누구인데, 어드카다 이곳까지 왔으매?” 만봉은 그 영감님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입장 곤란하면 말 아니해도 괜찮으매” 조금 있더니 무명 치마저고리에 댕기를 곱게 따 뒤로 늘어트린 다 큰 소녀가 하얀 사기 대접에 물을 담아 가지고 들어왔다. 그는 만봉을 보자 양쪽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으스레 해진다. “내 보기에는 무엇엔가 쫓기는가 보오, 아니 그렇소? 하지만 아무 걱정 하지 말기요. 여기는 아주 외진 두메산골이라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테니 말이요. 무슨 일인지는 내 모르지만 구지 알고도 싶지를 않소. 하니 맘 푹 놓고 여기서 따뜻하게 겨울을 나고 건강이 완전히 회복이 되면 내년 봄쯤 가던지, 그거는 그때 가서리 마음 정하여도 늦지 아니하매. 그리고 이쪽은 내 딸이요. 어서 물부터 날래 받아 마시라요. 여름에 따 두었던 석청을 탄 꿀물이요. 이것 쭉 들이마시면 아마도 얼었던 몸이 확 풀릴끼구만뀉.!” 만봉은 이리도 극진히 대해주는 그들이 한없이 고마웠지만 아직은 자신이 포로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언제고 기회가 되면 그때는 모든 걸 다 털어놓기로 했다. 영감님 말씀대로 따뜻한 꿀물을 마시고 나니 거짓말처럼 온몸이 따뜻해지며 어름장처럼 얼어붙어 있던 온몸이 눈 녹듯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조금 있더니 영감님은 다시 딸을 부른다. “얘, 말자야! 물이 다 더워졌으면 내가 일러 준 데로 하거라. 너도 심심하고 적적할 텐데 나이도 이쪽이 더 많아 보이니 있는 날까지라도 오빠라 부르려 마. 이 청년은 동상이 너무 심하기도 하지만 기력이 부쳐 본인이 씻을 수가 없으니까 네가 좀 도와줘야 하매. 대신해서 씻어 줘야 한다 이거이매. 지금은 한 생명이 죽느냐 사느냐 중요한 순간이 아니매? 한 생명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상처에 물이 다면 덫 날수가 이어야, 조심해서 잘 하여야 하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자배기를 들고 들어온 딸에게 영감님은 많은 것을 주문했다. 순간, 소녀의 얼굴이 다시금 빨개졌다. 만봉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산골 소녀라 그런지 순진하게 보이면서도 상당히 조숙했다. 그런 소녀에게 몸을 맡긴다는 것이 좀처럼 용기가 나질 않아 만봉은 몇 번이나 사양을 했지만 영감님은 역정 섞인 얼굴로 다그치고 있었다. “아니, 어찌 우리 맘을 그리도 몰라주고 그러매, 그러면 왜 여기까지 왔으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그런거가 아니고 무엇이매. 우리에게도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 줘야 할 도리가 있다 이 말임 네다. 우리말 뜻을 알갔시요? 그리고 젊은이, 미안하지만 내 말을 들으시라요. 저 이거이 수건인데, 할 수 없시오, 이것으로 눈을 가리시오.” 노인이 달려들어 만봉의 두 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영감님이 씻어주는 것보다는 딸이 씻어주는 것이 젊은 남자 환자에게는 그 효능이 몇 배도 더 된다는 것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어떤 약보다도 그만한 효능은 없을 것도 같았다. 지난여름 집을 나온 이후, 전쟁터에서 목욕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터에서 비를 맞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전쟁을 하며 땀과 피범벅이 되어 온몸에 베여있으니 그 냄새가 오죽이나 고약하랴. 만봉은 영감님의 말씀을 듣기로 하고 소녀에게 몸을 맡겼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소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 후, 망설이든 소녀의 손길이 만봉의 어깨에 닿는 순간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는 손길로, 조심스럽게 만봉의 옷깃을 풀기 시작했다. 우선 중공군이 입던 누비바지와 저고리부터 벗기고는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바가지로 물을 퍼 끼얹어가며 사내의 몸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씻고 또 씻어주었다. 만봉은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 정황 속에서도 소녀의 가쁜 숨소리와 풍겨 대는 파릇파릇한 풀 냄새 같은 향기는 스무 살 청년의 욕망을 잠재우기란 그것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만봉의 목욕을 끝내고 소녀는 마른 수건으로 물기까지 닦은 다음 아버지가 외출하실 때면 입던 옷을 갈아입으라고 곁에 꺼내 놓았다.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누가 보더라도 딴사람만 같았다, 만봉은 하늘을 나를 것 같이 몸이 개운해지며 이제는 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살 것만 같았다. 영감님은 만봉을 다시 아랫목에 눕게 했다. 그는 우선 따뜻한 물에 무슨 가루를 푸는 것 같았다. 옛날부터 아껴오던 웅담 가루라 했다. 몸속에 어혈을 풀어 피가 원활하게 돌게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기력을 보강하는 데는 이만한 것도 드물다고 했다. 영감님의 치료는 끝이 없었다. 팔팔 끓는 물로 동상 걸린 부위를 닦고 오소리 기름을 녹여 바른 다음, 지난여름 양귀비 진을 긁어 만든 아편 가루를 상처부위에 골고루 발라 주었다. 극약이기는 하지만 특효였다. 만봉은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좋아졌다. 방은 달랑 하나인데 중간에 가림막 비슷하게 문을 달고 영감님은 아랫목을, 그리고 딸은 윗목을 사용했다.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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