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등병의 귀향(歸鄕)

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왔다. 해빙기라 그런지 국경의 날씨는 비가 자주 오고 안개 끼는 날이 잦았다. 그날은 초저녁부터 안개가 자욱한데다가 보슬비까지 내린다. 말자는 요즘에도 체력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교화소에서 하던 혁명 체조도 하고 몸에 땀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달리기 연습도 했다. 모두가 비상시를 대비한 훈련이다.

그날도 운동을 막 끝내려고 하는데, 경비대에서 근무하는 아들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 밤 정각 열시, 경비대 제3초소 앞으로 빨리 나와야 된다고 했다. 언제인가 아들의 면회를 간 적이 있었다. 아들은 국경경비대 소속 제3 경비대장, 북조선 인민군 대위였다. 모두가 그 교화소 소장이 만들어 준 것이다. 두만강이 흐르는 그 초소 앞에 강폭은 넓어도 믈 깊이는 가장 얕은 곳이라 했다.

말자는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r는 남편의 유골부터 챙겨 허리춤에 꽁꽁 묶었다. 이십리도 더 되는 길을 자전거로 달려왔다. 손전등이 세 번 깜빡거린다. 아들이 보내는 신호가 틀림없다. 말자는 약간 오르막길이라 타고 온 자전거도 내 팽개치고 불빛이 비추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아들이 달려오며 귀속 말로 속삭인다. “엄마! 시간이 급해요. 서둘러야 해요. 지금 나는 근무교대를 하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재내들이 눈치 채기 전에 우리는 강을 건너야 돼요. 그리고 엄마 놀라지 말아요. 우리는 지금 남조선으로 가고 있어요.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던 남조선,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가고 있는 거예요. 경비 초소에는 양담배와 양주를 보따리로 가득 사주고 왔으니 한동안은 정신이 없을 거야요. 자 빨리 건너야 돼.”

갑자기 아들로부터 남조선으로 간다는 말에 말자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며 감격했다.

순간 그는 꿈만 같았다. 그것은 남편의 한을 풀어주는 길이요, 지금껏 사회주의로부터 받아온, 인민에 대한 학대와 인권유린에 대한 복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어코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며 마음이 급해 졌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어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말자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남편의 유골을 다시금 확인을 하며 아들의 손에 끌려 강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강물은 예상한대로 그리 깊지도 않고 물발도 세지 않았다. 강을 건너오면서도 말자는 딸이 걱정이 되었다.

“네 동생은 어쩌려고 같이 간다 안 했나. 혼자 떼어놓은 것은 아니지?”

말자는 딸이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참, 아무려면, 오빠가 되어 동생을 혼자 남겨 두겠어요. 동생은 강 건너에서 벌써 나와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들 모자는 두만강을 무사히 건너 중국 땅을 밟았다. 그토록 마음속으로 고대하던 자유를 찾아 두만강을 건넌 것이다. 강을 건너자 아들 말대로 저만치 서 엄마를 부르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 서야 그들의 탈북을 알아챘는지 강 건너 북한 땅 경비 초소가 발칵 뒤집혔나 보다. 총소리가 들리고 경비대장 박대호의 이름을 부르며 야단법석들이다.

아침, 이른 시간에 전화가 걸려왔다. 수호는 전화기를 들었다. 그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여~ 보세요!”

어제 밤, 그 남자의 목소리다.

“네, 수홉니다. 박. 수. 호!”

수호는 어제와는 달리 친절하고도 신중하게 전화를 받았다. 박 만 봉 이라는 양아버지의 이름을 미처 생각을 못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것을 자책을 하며 많이도 후회를 했던 터라, 이번에는 정신을 차려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겸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상대편에서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네! 여기는 대한민국 ooo인데요. 혹 박, 만, 봉 씨를 아시나요?”

다행이도 어제와 똑 같은 전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오히려 수호가 더 궁금해 물었다.

“네! 맞아요. 맞아! 우리 아버지 이름이 맞아요. 그런데 어제 밤엔 갑자기 이름을 대는 바람에 내가 착각을 했나 봐요. 사실은 그 분이 저의 양아버지 시거든요. 그런 데다 너무나 오래, 아주 오래전 일이라 그만 ∙∙∙.

수호가 너무나 장황하게 전화를 받자 상대편에서는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 정부 ooo인데요.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한 참 위태로울 때, 학도병으로 지원한 박, 만, 봉 씨를 아시냐고요?

수호는 혹시 어제 밤처럼 실수를 할까 염려되어 이번에는 다급하고도 신중하게 대답을 했다.

“네! 그렇다고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어제 밤부터 왜 그걸 자꾸 묻느냐고요?”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그분이 자유를 찾아 어제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가족들과 함께요. 축하드립니다.”

전화를 받은 수호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꿈만 같았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진짜로 우리 아버지가 돌아오셨다고요 ∙∙∙

수호는 전화를 받자말자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향하여 뛰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아버지가 돌아 오셨데요. 아버지가요.

수호가 외쳐대는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조용하던 마을이 이른 아침부터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소식이 없던 수호의 양아버지가 돌아오셨다는 소식에 온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마을회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