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등병의 귀향(歸鄕)

만봉은 고개를 숙여 고향 쪽을 향해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결국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이대로 죽어간다는

것에 분노와 울음이 북받친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만봉의 최후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능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런데다 이제는 너무나 힘들고 배고픔에 더 이상 이겨낼 수가 없다. 차라리 이대로 죽고도 싶었다. 마실 물도 없어 갱도 안에 흐르는 물을 그 대로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데도 당 간부들은 장군님께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실 땐 이슬만 마시면서도 일본 놈들과 전투를 벌였다고 선전을 해댄다.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고 탄가루가 폐 속에 밤송이처럼 박혀 죽어가는 사람도 헤아릴 수도 없었다.

세월이 얼마나 흘러갔는지도 모른다. 만봉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지푸라기와도 같았다. 빈대 벼룩은 어찌나 많은 지 가려워 견딜 수가 없다.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앞도 잘 보이지 않고 숨이 차 오르고 움직일 기력조차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광업소 사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사무실에서 광부를 개인적으로 부르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다. 보는 사람들 모두가 이제는 살아서 나가게 되었다며 부러워하는 표정이다. 무슨 일일까. 갑자기 왜 날 보자는 걸까. 만봉은 불안했다. 자신을 부를 이유가 없다. 기력이 부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광업소 사무실로 들어갔다. 서녀 명의 남자들이 만봉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무성 보위부 요원들이다. 그들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로 만봉을 욱박지른다. “동무래 내 몇 마디 묻갓시오. 이름이 만봉이요, 박만봉!?” “그런데요. 내가 박만봉인 데요.” “이거 이 바른대로 말 하라우, 우리네 이미 다 알고 왔습네, 기리니까 서로가 피곤하지 않게 말이오. 그날은 어디서 무슨 일 했스메?”

밑도 끝도 없이 ‘그날’이라는 말에 만봉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머뭇거리자 그 중 한 사람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만봉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기리니끼니 1950년 12월 17일 새벽 1시, 어디서 무얼 했냐고 묻고 있으메” 갈수록 태산이다.

만봉에게 1950년 12월 17일은 까마득한 수십 년 전 일을 지금 당장 대라고 들이 대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만봉이 아무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리자 가죽으로 된 채찍으로 만봉을 내리친다. 옆으로 고꾸라진 만봉의 어깨쪽지 살갗이 벗겨지며 피가 주르륵 흐른다. “그러면 동무래 가지고 있던 그 따발총은 어디서 났으메? 바른대로 말 하라우. 그날을 기억 못 한다니 지금 동무는 우리들을 속이고 있다는 게 분명 항거이구만 그래. 귀신은 속여도 도당 보위부, 이, 방대철은 못 속이 메, 그러면 내가 말 할끼구만.”

순간 만봉은 따발총 이야기가 나오자 전신에 전율이 흐른다. 아니 그것 까지 어떻게 저들이 알고 있을까? 만봉은 기가 막힌 채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마자 이야기 하갔소. 1950년 12월 17일 새벽 1시경, 장진호 부근 유담리 전투에서 포로가 된 미 제국주의 놈들과, 남반부 국군 포로 아 새끼들 후송하던 중, 중국 해방지원군 호송병을 목을 졸라 죽이고 빼앗은 총 아니메. 기것두 행군 중 날아든 박격포탄 조각에 다리를 부상당한 그 지원군을 목 졸라 죽인, 그래도 뭐라 둘러 댈 건덕지가 있으면 날래 말해 보라우.”

그 말을 들은 만봉은 앞이 깜깜하고 소름이 돋쳤다. 지금, 저들 앞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한때는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주리라 믿었던 그 따발총이 지금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확실한 물증이 확인된 이상, 심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판단한 그들은, 달려들어 만봉을 포박하고 수건으로 두 눈을 가렸다. 덜컹거리는 목탄차 트럭에 실려 한참을 달리더니 내려놓는다. 순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서 날래 내리기오. 시간이 없소. 자, 동무를 인계했으니 우리는 이만 갈까구만. 동무도 잘 가오. 그리고 우리를 원망은 하지 말기오. 그저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혁명과업을 완수하다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할 꺼구먼, 아니 그렇소 동무!” 한참을 저희들끼리 짓거리더니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이 떠난 지 얼마 후, ‘오늘은 특별한 공개처형이 있다’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곧이어 확성기로, “조선노동당과 북조선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 장해가 되는 남반부 출신 국군 포로 아 새끼를 공개처형 하는 날”이라고 선전을 해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만봉은 드디어 이렇게 죽는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만봉은 고개를 숙여 고향 쪽을 향해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결국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이대로 죽어간다는 것에 분노와 울음이 북받친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만봉의 최후였다.

그런 서실조차 모르는 말자는 오늘도 국경선 부근에 있는 ‘전거리’교화소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산다는 것 보다는 마지못해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다. 교화소의 생활은 마치 짐승우리와도 같았다. 조그만 한 방 하나에 수십 명씩 포개서 잠을 자야만 했다. 사람 몸에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뼈만 앙상하게 바짝 말랐다. 얼마나 말랐는지 뼈가 살갗을 뚫고 나올 것 같았고 비듬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전신에 돋아났다. 서로 살을 맞대며 뒤엉켜 생활하는 바람에 빈대 벼룩들에게는 요새와도 같았다. 얼마나 사람을 파먹어 대는지 가려워 견딜 수가 없다. 긁어 댄 자리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거의가 피부병 환자들이 득시글거렸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