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병 혼을 찾아서

나는 1966년 1월 주월 한국군의 전사자료 기획과 뉴스영화 ‘월남전선’(격주로 전국극장 개봉)을 취재하기 위해 3군중에서 선발되어 소정의 정훈교육을 받고 임지인 사이공으로 떠났다. 당시 나는 해병대 소속으로 국방부 국군영화 제작소에 파견되어 국내최초로 해외원정군의 작전일상에 투입되어 전투를 뉴스영화로 수록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우리들의 역할은 단순 촬영 병의 수준이 아니라 특파원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공군중사 1명이 팀장이 되었고 육군 상병 1명과 나를 포함한 해병 1명이 국방장관의 특별명령으로 파월되었다. 3명이 전지로 떠나던 날의 감회가 새롭다. 새벽 2시경 극비리에 합참관계 요원들과 지원부대 요원들의 파송식이 김포공항의 새벽을 깨고 거행되었다. 그때 기억에 남는 것은 봉투를 주며 머리카락과 손톱을 넣으라는 것이었다. 죽어 사체를 못 찾으면 그것이 나의 존재를 대신하여 준다며 관계자들이 수거해갔다. 순간 긴장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우리들을 태운 C125수송기는 타이페이와 마닐라를 거쳐 다음 날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에 도착했다. 1월의 베트남은 사우나탕 같은 습기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트랩을 내려 주변을 돌아보니 공항의 모습은 없고 미군 보충병들의 텐트들이 활주로 주변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이 무렵이 미군의 월남전 파병군의 증가가 가장 피크를 이루는 시기였다.

우리들은 한국군사령부에 본부를 두고 각 부대의 작전종군에 돌입했다. 나는 예외로 맹호부대를 맡았다. 당시 청룡을 단독으로 담당할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맹호5호 작전부터 성실히 취재했다. 사병이라는 계급 때문에 임무수행에 지장이 생길까봐 국방부는 나에게 계급장 없이 활동할 수 있게 특별조치를 해주었지만, 맹호 참모들은 어린 나의 신분을 곧아 알아차리고 계급서열로 대우했다. 모든 것이 불편했다. 해병대의 자존심이 발동했다. 결국 취재자료 관계로 일부 불편한 점이 있었으나 무사히 넘기고, 나는 청룡부대로 베이스를 옮길 것을 본부에 의뢰했으나 몇 번이고 불가로 되돌아왔다. 나는 당시 국방장관이셨던 김성은 장관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나의 해병을 사랑하는 글을 받아본 김성은 장관께서 감동을 하셨는지 당시 국방부 정훈국장에게 지시해서 내가 청룡에서 활동하도록 허가를 내려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성은 장관의 해병 사랑은 남달랐던 것 같았다. 당시 청룡부대의 정훈참모였던 박영옥 대위는 나의 청룡부대 상주를 크게 반겼다. 여단 단위에 국방부 특파원이 상주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봉출 여단장도 대환영이었다.

청룡부대는 캄란 상륙을 거쳐 투이호아에 여단본부를 구축했다. 여단본부는 사막과 다름없는 황폐한 지역이었다. 나를 태운 수송기는 투이호아 모래사막에 가설한 군 임시 비행장에 착륙했다. 청룡여단의 형상은 삭막했다. 모래폭풍이 불면 식사를 못할 정도의 열악한 환경에서 버티고 있었다. 맹호부대는 이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청룡병사들의 벙커는 야전 텐트였고 그 현장 모습이 기동부대임을 한 눈에 알게 하였다. 나를 태운 수송기가 모래폭풍을 일으키며 도착하자 여단 정훈참모 박영옥 대위가 나를 정중히 맞이해 주었다. 지프차 앞자리를 나에게 양보해주며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내가 해병대 졸병임을 알면 큰일 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계급보다는 임무를 위해 이곳에 왔고, 자랑스런 해병대원으로서 친정이 좋아 내가 택한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친정에 온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그날 저녁 이봉출 여단장은 환영파티를 열어주었다. 참모장 정태석 대령을 위시한 모든 참모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청령부대를 택해 와준 것에 대해 감사했고 누구도 나의 계급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종군기자 박경삼의 청룡부대 생활은 시작되었다. 정훈참모부의 정훈장교 권혁조 중위를 비롯한 요원들은 내 정체를 의심하면서도 부러워했다. 아무리 보아도 20살밖에 되지 않은 동안의 청년이 국방부 종군기자로 출현한 것에 관심이 쏠렸다. 이봉출 여단장은 나를 청룡의 보물이라고 했다. 당시 국민들과 대통령의 관심은 주월 파병 군에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취재한 뉴스들이 국민과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채널이 되었고, 이를 통해 청룡과 해병대의 활약상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단장은 나의 취재 활동에 적극적인 협조를 지시해 놓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수개월 동안 청룡부대의 단위 부대별 작전을 종군했고 그 기록을 본국으로 보내 청룡부대의 작전활동이 뉴스 영화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러던 7월 어느 날 생포한 베트콩 포로의 정보에 의해 대대단위 작전이 개시된다는 입소문이 돌았다. 작전명은 ‘태풍’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