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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제목 | 카메라에 잡힌'청룡영웅 산화(散華)순간' |
| 작성자 | kookbangco |
 해병 영웅을 만나다 ‘작전이다’하면 취재를 위해 예하부대 곳곳을 밤잠 없이 뛰어야 했다. 일주일 동안 구두 한 번 벗어보지 못하고 발이 짓물러가며 작전 종결까지 무거운 취재장비를 짊어지고 사병들과 함께 생사를 같이했다. 나의 카메라 앵글이 닿는 곳에 해병대의 전과가 증명된다는 신념으로 정글을 미친 듯이 뛰었다. 당시 투이호아 청룡여단에 파병된 분들이라면 35mm 전투용 무비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나를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어느 날 3대대 취재를 위해 대대본부를 방문했을 때 당시 정보장교 이인호 대위가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이 대위의 야전 벙커에서 며칠을 함께 지낼 때도 있었다. 그의 첫 인상은 선생님 같고 선비 같은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대위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나에게 영화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하였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시나리오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내가 다른 부대로 이동하기위해 헬기장으로 갈 때는 배웅하며 몸조심하라는 충고를 해주는 자상한 형님과 같았다. 어느 날, 3대대에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포로들의 정보를 캐치하여 적 대대본부를 급습하는 작전이었다. 나는 취재를 위해 3대대 헬리포트에 도착했다. 마침 이인호 대위가 포로들을 앞세우고 작전 병력과 헬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반가워 헬기에서 내려 이 대위에게 인사를 했는데 왠지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며칠 전 나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을 느낄 수 있었다. 헬기에 오른 이 대위는 의자가 아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창밖의 흘러가는 풍광만을 바라보며 상념 하는 듯 했다. 그 날이 죽음의 운명이 닥친 1966년 8월 11일이었다. 헬기가 작전지역에 병력들을 진입시키고 이인호 대위는 포로들을 앞세우고 적 동굴 수색에 나섰다. 나의 육중한 35mm 무비카메라는 그들의 험난한 정글 수색전을 따라 기록하기 시작했다. 순간, 포로가 동굴 진입로를 발견하고 이 대위에게 위치를 알려준다. 진입부대는 혹시 날아올지도 모르는 적의 포탄기습을 피해 안전위치로 몸을 숨긴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동굴 입구가 보였다. 대원들은 숨을 죽이고 본격 수색에 돌입했다. 이인호 대위는 스피커로 동굴을 향해 모두 즉시 투항할 것을 방송했다. 적막한 흐를 뿐 동굴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이 대위는 9중대 3소대 3분대장 외 수색조에게 투입명령을 내렸다. 물론 나의 카메라 앵글 초점 역시 수색조를 따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수색조가 진입하고 난 후 곧 총성과 포화가 동굴에서 났다. 이 대위와 중대원들은 바짝 긴장했다. 잠시 후 진입한 3분대 요원들이 적의 노획 무기들을 들고 동굴을 빠져 나왔다. 3분대장은 동굴 통로를 통하면 적의 본부가 위치해 있음을 확인했다는 보고를 한 후 다시 진입을 시도했다. 수색조가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나무라고 이 대위는 자신이 직접 동굴진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이 대위의 모습을 지켜보며 카메라를 계속 이 대위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다시 총성이 났다. 잠시 후 이 대위는 노획물들을 끌어올려왔다. 그리고 다시 진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순간 동굴 안에서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꼭 움켜지고 가시밭으로 뛰어 들었다. 순간 의식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경과 했을까? 무의식 속에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구인가 나를 흔들어 깨웟다. 눈을 떠보니 내가 논두렁에 누워 있었고 하늘엔 십자를 그린 병원 헬기만 떠올라 있었다. 중대 의무병이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이인호 대위는…?” 무엇보다도 친형과 같았던 이 대위가 걱정되었다. 의무병은 침통한 표정으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끝내 동굴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사한 것이다. 허무가 밀려왔다. 전쟁의 비정함을 종군활동을 통해 체험했지만 선비 같고 형처럼 자상했던 분과 순간적으로 생사가 갈라졌다는 사실에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잠시 기절하였고 가시에 찔린 것 외에는 부상이 없었다. 직업적으로 흙투성이가 된 카메라를 점검했다. 당시 카메라는 극장용 뉴스영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35mm 전투용 필름 무비카메라를 사용하였다. 촬영한 것을 지금 같이 현장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단지 필름이 찍혀간 흔적을 계산해 기록수치가 나타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필름 수치를 확인했다. 처음 촬영하고 있을 당시의 필름 수치보다 많은 량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인호 대위의 마지막 순간이 촬영되었다는 증거였다. 촬영된 필름은 현상이라는 화학적 공정을 거쳐야만 영상으로 만들 수 있었던 시대였다. 분명히 사랑하는 형, 이인호 대위의 마지막 모습이 찍혔다는 확신이 들었다. 카메라를 소중히 챙기며 병원 헬기에 올랐다. 전사한 이 대위의 시신도 판초에 쌓여 헬기에 같이 실렸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흘러가는 풍광만을 바라보며 상념에 쌓였던 이인호 대위의 모습, 며칠 전 같이 시나리오에 관한 이야기로 밤새움 할 때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오늘 일을 예고했던 것일까? 병원 헬기는 창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산자와 죽은 자, 이렇게 운명 을 달리한 이 대위의 시신을 바라보니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해병의 영웅은 많은 부하들을 살리고 이역의 땅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여단본부로 돌아오는 병원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장엄한 조곡이 되어 살신성인을 보여준 영웅 이인호 대위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들려온다. 여단본부의 헬리포트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봉출 장군과 참모 그리고 병사들이 이 대의의 전사 소식을 듣고 헬기장으로 달려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 헬기에서 옮겨지는 이인호 대위를 향해 모두 마지막 거수경례를 올리고 있었다. 잠시 후 이봉출 여단장은 내게 다가와 무사귀환을 염려해주었다. 나는 카메라에 찍힌 이인호 대위의 작전 상황을 보고하고 이 필름을 본국으로 긴급히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참모부로 돌아와 국방부에 이 사실을 긴급 보고 했다. 여단장은 항공대장에게 사이공까지 이 필름을 공수할 것을 지시했다. 정훈장교 권혁조 중위와 항공대장은 밤새 L19기를 몰고 사이공 정훈부에 필름을 신속히 전달했다. 이 필름은 지급으로 국방부로 공수되어 당시 국군영화제작소에서 철야로 현상작업을 마쳤는데 예상한 대로 이인호 대위의 마지막 순간이 필름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국내외 언론들은 이 필름을 제공받아 이인호 대위의 정렬한 전사를 국민들에게 알리게 되었다. 여단장의 눈물 그해 10월 어느 날 밤, 청룡부대 연병장에 영화를 보기 위해 장병들이 모여 들었다. 이봉출 여단장과 함께 참모들도 장병들과 함께 오늘 도착한 뉴스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스크린에 영사기의 빛줄기가 섬광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월남전선 제6호’ 장병들은 숨을 죽이고 아나운서의 해설에 귀를 기우리고 있다. ‘청룡의 해풍작전 보도’, “투이호아에서 국방뉴스 박경삼 보도원의 보도입니다”와 함께 곧 이인호 대위가 참전했던 작전상황과 전사 직전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도되기 시작했다. 장병들의 마음에 이 대위의 살신성인의 정신이 각인되는 순간이다. 이봉출 여단장은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흠치고 있었다. 곧, 이봉출 여단장은 “박경삼 기자, 지금 어디 있는가?”하며 찾았다. “박경삼 기자는 며칠 전 사이공으로 복귀했습니다”라는 정훈참모의 보고를 접한 여단장은 자신이 직접 사이공으로 가서 박 기자를 포상하겠다고 준비를 지시했다. 나는 이인호 대위의 취재보도가 특종이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 대위와 밤을 지세 워 가며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던 형님 같은 분을 잃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느 날, 이봉출 여단장의 부관 이 중위가 사이공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여단장께서 나를 만나러 일부러 이곳에 오셨다”는 것이다. 나는 장군님이 나를 생각해 주는 것에 감사를 느끼며 이 중위가 안내하는 사이공 카라베라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여단장은 사복차림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첫마디는 “박 해병 수고했어. 이렇게 불러도 되겠지? 난 자네가 졸병인줄 진작 알았지. 그게 무슨 문제야, 해병대를 위해 이렇게 큰 업적을 남겨 주었는데. 故 이인호 소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지. 박 해병이 그 순간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타군들의 반대를 꺾지 못 했을 거야.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 공적, 정말 큰 공을 세웠네.” 이렇게 나를 격려와 함께 훈장 상신을 약속했다. 에필로그 67년 2월 어느 날, 제대를 두 달 앞두고 국립묘지의 故 이인호 소령 묘소를 참배했다. 살아서 이렇게 참배하는 내가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대의 살신성인의 정신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렇게 살아서 존재할 수 있을까? 지금도 늘 이인호 소령의 영전에 머리 숙이며 감사의 마음으로 추모의 염(念)을 기리고 있다. 나는 40년 넘게 영상이라는 한 분야에서 종사해왔다. 방송영상기자로, 영상다큐 감독으로, 그리고 CF감독으로 1천여 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고 2002년 월드컵의 공식영화 총감독과 전시영상 전문가로 또는 영상교수로 후학을 지도해온 세월이었다. 이처럼 한 분야의 정점에 도달하기까지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 에너지의 원동력은 ‘해병정신’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총과 수류탄 대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정글을 미친 듯 뛰어다니며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故 이인호 소령의 위대한 희생의 순간을 목격하고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끈기와 인내와 열정의 ‘해병정신’이 아니었을까? 1966년 열하의 남국 베트남 투이호아에 인생의 닻을 내린 ‘해병영웅 故 이인호 소령’의 숭고한 살신성인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이를 신문 에서 보도한 것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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