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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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이 되면,

북한산 정상 쉼터에서 산악인들이 모여앉아

서울 전경을 굽어보며 지긋이 눈을 감고

아! 삼계 5원의 일체가 공(空)이로구나 하고

깊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편안한 좌석이 될 것이고

나는 구름이 되면,

삼복더위에도 시골 논밭에서 천부적인 농심(農心)으로

오곡을 정성껏 경작하기로 잡풀을 메는 농부 머리에

내리쬐는 뙤약볕을 차일처럼 가려주는

검은 먹구름이 될 것이고

나는 빗방울이 되면,

석 달 계속되는 가믐에 겨우 심어놓은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시름에 잠겨 한숨짓는

농부의 논에 장대 같은 빗줄기가 되고 싶다.

나는 달빛이 되면,

동짓달 밤 고향 산동네 하얗게 눈 덮인 장독대에 나오셔서

더듬거리는 어머님의 굳은살 이 박힌 자애로우신 손등을

비추어 드리고 싶다

나는 죽어서 바람이 되면,

일손을 잠시 놓고 우는 아이에게 고운 젖을 물리며

아기 이마를 어루만지는 천사 같은 여인네의 땀방울을

식혀주는 산들바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