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자 : 2026년 8월 01일 광고문의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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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조들의 청백리 정신, 잊으셨나요?
작성자 kookbangco




김명규 회장


전)한국광고사진가협회




청렴과 근신, 명성과 치적 빛나는 咸有一 선비



함유일(1106~1185)의 관향은 恒陽(지금의 陽根),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에게 양육되었다. 열다섯 살 때에 서울에 올라오자 아버지의 친구인 재상 李俊陽이 불쌍히 여겨 吏部記官에 임용하였다.

인종 13년에 西京에 반란이 일어나니 유일이 종군하여 戰功이 있었다. 선발되어 選軍記事가 되니 밤낮으로 직무에 열심하였으며, 私로써 公을 해치는 일이 없었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때에 禁軍의 給食이 소정의 기준대로 되지 아니하니, 군사들이 의논하기를 “만약 弊衣記事(떨어진 옷은 기사, 즉 함유일을 말함)가 금군에 있다면 반드시 이러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때 마침 兩部에서 청렴한 선비를 추천하게 되어, 樞密使 王冲이 유일을 추천하였다. 임금이 평소부터 그의 이름을 들었으므로 매우 기뻐하여, 내시로 불러들여 군의 급식의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

임금이 일찍이 長源亭에 거동하여 근신들에게 활 쏘는 일을 시험하였다. 유일이 과녁을 맞추어 많은 돈과 명주를 상으로 받았으나, 자기 집에 들여가지 않고 모두 팔아서 군의 취사도구를 마련하였다.

뒤에 寶城의 수령이 되어서는 청렴하고 근신하여 명성과 치적이 빛났다. 의종 조에 橋路都監, 명종 조에 兵部侍郎, 工部尙書에 이르렀다.


유일은 평생을 통하여 옷을 삼베로 지어 입었으며, 그릇은 질그릇을 이용하였다. 살림살이를 일삼지 아니하니 그의 아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여러 아이들이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문호의 터전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찌 이를 도와주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내가 근면하고 검소한 것으로 절도를 지켜서 문호를 세웠으니 아이들은 마땅히 정직하고 절검하여 운명을 개척할 것이지 어찌 빈궁한 것을 적용하고 슬퍼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出 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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