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호 근
예) 공군 소장, 정치학 박사
얼마 전(2020년 12월) 육군 부사관들 현직 육군총장의 발언에 대해 군 인권위에 진정을 내는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육군 대대급 이상 부대 주임원사들과 화상회의에서 육군총장이 ‘장교들의 반말 지시가 당연하다’라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육군 지휘부의 노력과 부사관들의 이해로 잘 해결된 것으로 알려져 다행으로 생각했다. 국가의 안보를 늘 걱정하는 예비역으로 이런 언론 보도를 보면서 군의 허리인 부사관들에게 ‘이상이 있으면 안 되는데’ 하는 우려가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최근에는 모든 관심이 정권 교체에 쏠려 부사관 처우와 같은 낮은 안보 이슈는 언론 보도가 없는 듯하다. 새로운 정부의 공약인 병사의 봉급 인상을 논의할 때 부사관 처우에 관한 관심도 가져주기를 바라면서 부사관의 중요성에 관한 평소의 소견을 정리해 보았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영관 장교 시절 있었던 부사관의 중요성에 대한 외부의 충고였다. 1970년대 말경에 한국군 고위층이 당시 이임하는 한미연합사령관에게 한국군의 취약점이 무엇인가를 충고해달라고 했더니 다음 세 가지를 조언했다고 한다. 첫째 한국군은 야간전투 능력이 매우 약하고, 둘째 전자전 및 화생방전과 같은 특수전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며, 셋째 병력구조에서 부사관과 같은 중간 허리 층이 취약하다. 이런 이유로 당시 각 군 본부에서는 조직을 신설하고 훈련을 강화하는 대비 활동들이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필자도 공군 본부에 새로운 전자전 직책에 보임되어 생소했던 업무를 하게 된 기억이 있어 부사관의 중요성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왜 부사관을 군에서 중간 허리 층이라고 할까? 우선 우리 몸의 허리와 그 중요성부터 알아보자. 허리는 등(갈빗대 아래)부터 엉덩이 사이의 잘록한 부분을 뜻하며 상체와 하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허리는 척추를 따라서 내려오는 신경 다발이 한데 모였다가 다시 분산되는 부분이다. 척추는 신체의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척추는 인체의 체중을 받쳐 주고, 온몸으로 뻗은 척추 신경은 신체의 모든 기능을 통제하고 조정한다. 그래서 허리에 있는 척추 신경에 이상이 생기면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고, 허리를 심하게 다치면 하반신 마비가 올 확률이 높다.
그러면 군에서 부사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2011년 육군부사관학교 창설 60주년을 맞아 당시 우리 대통령이 직접 축하 휘호를 보냈고, 이에 대해 학교 주임원사가 감사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 감사 편지에 대통령이 직접 답신을 보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답신 내용 중에 부사관의 역할이 확실히 정리되어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지금 우리 군은 제2 창군의 각오로 국방개혁에 매진하고 있다”라며 “지난 60년간 장교와 병사를 잇는 허리로써 국가 방위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부사관 여러분이 앞으로도 ’군 전투력 발휘의 중추’로서 더 큰 임무를 수행해 주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여기에서 왜 부사관을 우리 몸의 허리라고 하는지 그리고 군 조직의 중추라고 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필자의 경험담이다. 1990년대 말 한미연합사에서 고급 장교로 근무할 때 목격한 일이다. 한여름 혹서기에 의장 행사가 진행되던 중에 기수단 소총수 한 명이 일사병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사열대 옆에서 선임하사(?)가 뛰어나오더니 소총수 역할을 자연스럽게 대신했다. 의장 행사는 별일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물론 쓰러진 소총수는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조용히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러한 부사관의 역할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년)에서 미국의 유명한 배우 버트 랭커스터가 연기한 선임상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무능한 중대장 대신 부대를 이끈다. 일본군 진주만 공습에도 용감하게 맞선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처럼 섬세하기도 하다. 정신적으로 연약한 어린 병사들을 이해하고 감싸 준다. 한마디로 부사관은 군 임무의 모든 분야를 수행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이 있고 또한, 일정한 사전 교육을 통해 지식을 쌓은 노련한 직업 군인이다. 그야말로 군 조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도맡아 처리하면서 아래와 위를 연결하는 군의 중추인 것이다.
우리 육군에서는 미 육군의 제도를 받아들여 1967년 ‘주임상사 제도’의 운용 방침을 제정하고, 대대급 이상 부대에 최선임 부사관을 주임상사라는 보직을 부여하여 부사관과 병의 대변인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해군과 공군에서도 주임상 사 제도를 채택하고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94년에 부사관 계급 구조가 현재의 하사·중사·상 사·원사로 변경되면서 직책 명칭도 주임상사에서 주임원사로 변경됐다. 그 후 지금까지 각 군의 주 임원사들은 지휘관의 진정한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군의 지휘관들도 그 중요성 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부사관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군에서는 여러 노력을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직업 군인인 부사관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최근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직업 군인에 대한 선호도가 약간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젊은이들에게 부사관에 대한 선호도는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현역 시절은 물론 전역 후 취업 보장 등과 같은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수 부사관 획득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군의 특성상 부사관들의 처우를 민간 사회의 인기 있는 직장 같이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국가를 위해 명예롭게 봉사하는 직업 군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병사 봉급 인상에 대한 새로운 정부의 공약을 보면서 군 전투력 발휘의 중추인 부사관 처우에 관한 관심을 군에서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도 더욱더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 필자 약력
전투 조종사 출신 예비역 공군 소장으로 정치학 박사다. 현역 시절에는 주미대사관 공군무관, 비행단장, 연합사 정보참모부장, 국방대학교 부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전역 후,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연구원, 한국공군발전협회 연구위원회(현, 항공우주력연구원)의 초대 연구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