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등병의 귀향(歸鄕)

만봉은 먹이를 낚아채는 사자처럼 위로 달려가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중공군 감시병의 목을 졸랐다. 여기는 전

쟁 터이고 나는 살아야 한다.

포로 대열에는 미군 포로들도 한명 두명 씩 섞이기 시작했다. 떼 놈들은 알아 듣지도 못하는 말을 손짓 발짓을 해가며 무어라고 떠들고 있다. 성질이 못돼 먹은 놈들은 이유 없이 포로들에게 발길질까지 해댄다. 어디로 끌고 가는지도 모른다. 만봉은 묻고 싶어도 청나라 병사들의 만행이 떠올라 그들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은 젊은 청년이셨다. 그 선생님은 병자호란이란 말만 들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청나라 병사들이 우리에게 저질은 만행을 생각하면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라고 격앙된 어조로 가르치셨다. 지금 만봉이 그 선생님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군과 유엔군들이 주둔해 있던 유답리가 불바다로 변했다.

좀처럼 믿어 지지가 않아 차라리 꿈이었으면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순간적으로 사람의 운명이 이토록 바뀔 수가 있을까. 몇 시간 전만 해도 중공군 포로들을 심문했는데, 지금은 포로가 되어 그들에게 심문을 당하는 비참한 꼴이 되었다. 그들은 미군 포로들을 손가락 짓을 해가며, 양키니, 껌둥이니, 심지어는 괴물이라며 조롱 들을 해댄다. 더욱이 부상이 심해 행군에 지장을 주는 포로들에게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방아쇠를 당겨 댄다. 그리고 죽은 시신은 길옆 도랑창에 내던진다. 그들의 최후가 너무나도 비참했다. 얼마를 이동했는지 날이 밝아오자, 행군을 멈췄다. 적들은 낮에는 미군들의 비행기를 피해 야간에만 이동을 한다.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지도 며칠이 지났다.

식량을 구경한 지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물도 떨어져 눈을 뭉쳐 입안에 넣어 혀를 글려가며 녹여 마셨다. 포로들의 행군은 계속되었다. 국경 부근까지 간다는 소문도 있고 아니면 국경선을 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미군 포로들은 더 이상 행군을 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포로들이 계속 늘어난다.

국군 포로들은 그런대로 잘 견뎌내는 것 같은데 미군들은 우리보다 더 힘들어 했다. 미군 포로들은 개인에게 지급된 털 외투와 내복은 중공군들에게 빼앗긴 지 이미 오래다. 짐승 털로 만든 방한모, 방한복, 방한화도 그들에게 빼앗겼다. 중공군들은 미군 포로들로부터 빼앗은 전리품들을 자기네들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상납을 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외투와 내복을 빼앗긴 미군들은 살인적인 추위를 더 이상 견뎌 낼 수가 없었다. 국경지대의 겨울바람은 얼마나 혹독한지, 찢기고 해진 군복 사이로 허연 속살이 보이는 미군 포로들을 더욱더 힘들게 했다. 생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우리나라를 지켜 주기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저토록 고생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군 포로들은 영양실조와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한사람 두 사람씩 죽어갔다. 중공군들은 포로들의 시신을 눈이 얼어붙은 도랑창에다 나무토막 내던지듯 내버리고 이동을 한다. 만봉도 죽으면 저와 똑같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던지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고 이를 갈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는 곳마다 마을의 집들이 텅텅 비어 있었기에 포로들은 방에서 그나마 추위를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런 날은 그래도 행운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란을 나갔기 때문이다.

포로들은 지붕에 볏짚으로 된 이엉을 벗겨서 불을 때기도 하고 땅속에 묻고 간 그 집안 내력이 기록된 족보와 옛날 귀한 책들도, 심지어는 문짝까지도 남겨 놓지를 않았다. 포로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먹지 못해 눈이 움푹 들어가고, 그 거대한 체구들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걸음도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얼마를 가다 보니 조그만 학교가 보였다. 학교운동장에는 수백 명도 더 될 듯한 미군과 한국군 포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미군 포로들을 분류하여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그들은 포로들에 관한 제네바협정을 일방적으로 무시해버리고 대부분 폭격으로 파괴된 전쟁 복구사업에 그들이 동원된다고 했다. 만봉이 이쪽저쪽으로 두리 번 거리 고 있는데, 문경 전투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를 만났다. 만봉은 반가웠지만 서로의 신변을 위하여 아는 체는 하지 않고 그냥 눈인사로 스칠 정도였다. 그가 지나가면서 귀띔을 해준다.

여기서 국군 포로들을 가려내어 출신 성분이 좋으면 인민군으로 무장을 시켜 전선으로 바로 보내고, 신분이 불량하면 무조건 전쟁 복구작업장이나 탄광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다시 인민군으로 전선에 투입이 되면, 기회를 보아 국방군 쪽으로 투항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봉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은 이미 만봉의 신분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공산군을 물리치겠다고 혈서까지 써가며 남조선 학도병으로 자원한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봉은 꼼짝없이 탄광행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운명이 갈리고야 말았다. 누구 던 살아서 돌아가면 고향 식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기로 그들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탄광으로 끌려가면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를 못한다는 소문들은 포로들의 입과 입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만봉은 어떻게 던 탈출을 서두르기로 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목숨, 차라리 도망이라도 치다 죽겠다는 각오가 심장을 뜨겁게 달군다. 그는 걸음을 걸으면서도 감시병의 눈을 피해 오직 탈출할 생각뿐이다. 그러나 낮에는 감시가 너무나 심해 그는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만봉은 무장을 한 감시병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감시병도 인간이라 깊은 밤에는 졸음이 올 때가 있을 것이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그날따라 눈보라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쳐 댄다. 잿빛 하늘은 우중충하기만 하다. 이럴 때는 포로들의 탈출을 염려해서 감시병들이 증원이 되었지만, 오늘 밤엔 병력이 부족한지 그런 기미는 보이지를 않았다. 감시병들은 포로들의 대열 맨 앞과 중간 그리고 맨 후미에 붙어 있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갑자기 조명탄이 터지고 미군들의 비행기 소리가 들려온다. 야간 공습이 시작되려 나 보다. 감시병들은 호루라기를 불어 대며 그대로 엎디라고 고함을 지른다. 만봉은 ‘이때 다’ 하고 길옆에 도랑창으로 굴렀다.

다행히도 미군들의 비행기는 아무런 공습도 없이 그대로 지나갔다. 아마도 이동하는 병력들이 포로들이라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포로들의 행군은 다시금 계속되었다. 포로들이 대열에서 이탈을 확인하기 위하여 이동을 하며 번호를 부치라고 한다. 분명 인원 숫자가 모자라야 되는데 누군가가 만봉 대신 번호를 댄 것 같았다. 포로들은 배가 고파 모두가 허기져 있었다.

만봉은 숨을 죽이며 국군 포로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대열이 다 지나가고 맨 뒤에 감시병이 절름거리며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 감시병도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모양이다. 부상병까지 포로 감시병으로 배치한 것을 보아 떼놈 들도 심각할 정도로 병력이 부족한가 보다.

만봉은 잠시 눈을 감았다. 다리를 절름거리며 뒤쫓아가고 있는 감시병이 자신이 숨어 있는 앞을 막 지나가고 있었다. 만봉은 먹이를 낚아채는 사자처럼 뒤로 달려가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감시병의 목을 졸랐다. 인간적으로는 좀 안 되고 미안하기는 하지만 여기는 전쟁터다. 때문에 나는 살아야 한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더욱이 우리의 전우들을,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이역만리 먼 곳까지 달려온 연합군들을 얼마나 많이 죽이고 고통은 또 얼마나 주었는가. 그보다 더 큰 것은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은 주범들이 아닌가. 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와 적개심이 들끓어 오른다.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두어 명의 포로들이 힐끔거리며 잠시 뒤돌아보았지만 더 이상 그들은 괘념치 않았다. 아마도 포로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쳐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실 자신들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데 남의 일에 신경 쓸 기력조차 없을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